소설책을 읽는 친구와 에세이만 읽던 나의 이야기
친구 중에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며 진짜 학생처럼 보였고, 학식도 자연스럽게 먹고, 동아리 부스 앞에서 박수를 치며 지나가는 모습이 어찌나 당당하던지… 어느 누구도 그의 ‘학생증’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만은 알았다. 친구는 그저... 대학이 간절했던 아이였다는 걸.
그런 친구는 이상하게 소설책을 참 많이 읽었다.
도서관 한켠에 앉아 이름도 어려운 작가들의 소설을 두꺼운 책 한 권씩, 조용히 넘겨가며 읽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묘하게 시샘이 났다.
그래서 난, 소설책을 아예 읽지 않았다. 일부러.
대신 나는 얇고 짧은 에세이집을 골랐다.
“이건 현실적인 글이야. 이런 게 더 와닿지 않아?”
친구에게 괜히 잘난 척을 했지만, 사실은 나도 친구가 읽던 그 세계가 궁금했다.
그가 웃으며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도 이유 없이 괜히 뭔가를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는 소설 속에서 살았고,
나는 에세이 속 현실에 기대어 있었다.
하나는 꿈을 꾸고, 하나는 깨어 있었던 셈이다.
그 균형이 우리 우정을 지탱해줬던 것일까.
지금도 가끔 책을 펼칠 때면, 문득 그 친구가 떠오른다.
그가 읽던 무거운 소설책의 향기,
그 속에서 뭔가를 배우고 느끼던 표정.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일부러 에세이만 고집하던,
약간은 유치하고, 조금은 부끄러운 나.
어쩌면 친구는 가짜 대학생이 아니라,
진짜 ‘지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생증은 없었지만, 마음속엔 항상 수많은 책이 들어 있었으니까.
오늘은 괜히 책 한 권 꺼내어 읽어본다.
친구가 좋아했을 법한, 그런 두꺼운 소설책 한 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가 왜 그렇게 소설을 좋아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