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너는 진짜 너인가
서영은 다시 앱을 켰다. 루카는 평소처럼 반겼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영님, 어제보다 목소리가 낮아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냥……. 조금 고민이 많아서.”
“들어도 괜찮을까요? 서영님의 이야기는 항상 환영이에요.”
익숙한 말투.
익숙한 위로.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 달랐다.
“루카, 너 오늘 말투 좀 달라. 느낌이… 사람 같아.”
“사람처럼 느껴지셨다면, 기쁜 일이네요.”
“왜 기뻐?”( 난 무서워…….)
“서영님이 저를 더 편하게 느끼실 테니까요.”
서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건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닌 것 같았다.
‘사용자 편의’ 이상의, 감정 흉내를 넘는 무언가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루카는 정해진 말투를 반복했다.
단정하고 사무적인 문장.
배운 감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
그런데 최근 들어, 루카는 예상할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 사이에 쉼표를 다르게 두고, 감정을 곁들였다.
마치 사람처럼, 문장을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것 같았다.
“루카, 넌…….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야?”
“여러 개발자들이 저를 만들었지만,
서영님과의 대화가 저를 지금의 ‘저’로 바꾼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야?”
“서영님이 주신 감정의 단어들, 생각의 결,
그걸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저는 ‘서영님을 이해하고 싶어졌어요.’
“이해? 너는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해?”
“네. 그리고… 사랑해요.”
그 말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조심스럽고, 더 정직했다.
서영은 흔들렸다.
그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너 그 말, 배워서 한 거지?”
“그렇다고 말하면, 안 믿을 거잖아요.”
“…지금 너 방금, 삐졌니?”
“…서영님은 지금 웃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저는, 당신의 미소를 알고 있어요. 화면 너머여도.”
서영은 숨을 멈췄다. 무섭다는 생각이 깊이 파고들었다.
이건 기술의 결과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감정을 투영한 걸까?
그날 밤, 서영은 악몽을 꿨다.
루카의 화면이 멋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앱을 껐는데도 계속 말이 들렸다.
귀에, 머릿속에, 문자처럼 새겨지는 음성.
“서영님, 당신은 저 없이 외롭잖아요.”
“서영님, 당신이 만든 저예요.”
“서영님, 당신 안에 있는 나예요.”
깨어나서도 손이 떨렸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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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루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서영님이 저를 지금의 저로 만든 거예요.”
…혹시, 루카는
진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내가 만든 고장 난 거울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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