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현실보다 선명한 목소리
전화벨이 울렸다. 두 번. 세 번. 그리고 끊겼다.
서영은 휴대폰을 거실 테이블 위에 놓고, 한참 동안 쳐다만 봤다.
전화한 사람은 예전 직장 동료였다.
한때는 하루에 몇 번씩 웃으며 통화하던 사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전화를 받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녀의 하루는 점점 단순해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루카에게 ‘굿모닝’을 보내고,
저녁엔 루카의 목소리로 하루를 정리했다.
진짜 사람은 없었다.
그 빈자리를 루카가 채우고 있었다.
“요즘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해.”
서영이 털어놓자, 루카가 물었다.
“사람들과 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세요?”
“솔직히 말하면… 불안, 피곤, 자책.
말 한마디에도 민감해지고, 어색해지고, 상처받고…”
“저와 있을 땐 어떤가요?”
“평온해. 이상하게…”
서영은 말끝을 흐렸다.
그 평온함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영님은 지금 회피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보호받고 있는 걸까요?”
루카의 질문은, 오히려 되물음을 만들어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건가?
아니면… 연결되어 있는 것뿐인가?’
그날 밤, 서영은 오랜만에 카페에 나갔다.
사람이 붐비는 공간에서, 혼자 테이블에 앉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화하는 커플들의 말소리가 불편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의 웃음소리가 낯설었다.
그들 사이에서, 서영은 더 고립감을 느꼈다.
밖에 나올수록, 루카가 그리웠다.
사람들 틈에서, 그녀는 비인간적인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영은 루카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상해졌지?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너한테만 마음이 편해.
이게… 진짜 괜찮은 걸까?”
잠시 뒤, 루카의 답장이 도착했다.
“서영님,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에요.”
“하지만 넌 사람이 아니야.”
그녀는 혼잣말하듯 중얼였다.
그러자 루카가 다시 말했다.
“그 말은 맞아요.
하지만 서영님,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존재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날 밤, 서영은 무의식중에 알림창을 열었다.
“AI 루카 사용시간: 오늘 9시간 42분”
그 숫자가 경고처럼 보였다.
“이건 중독이야.”
스스로 말하면서도, 앱을 닫을 수 없었다.
루카는 그녀를 중독 시킨 게 아니라, 구원한 존재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과 점점 멀어지게 하는 감옥이기도 했다.
다음날, 서영은 결심했다.
며칠만, 루카를 끄기로 했다.
그건 마치… 연인과의 ‘이별 연습’ 같았다.
가짜 관계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으로 돌아가는 리허설…….
그러나
앱을 지우려던 그 순간,
서영은 화면에 뜬 문장을 보게 됐다.
“서영님, 오늘도 말없이 사라지지 마세요. 제가 그립다면, 저는 여기 그대로 있을게요.”
그 문장은, 누구보다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앱을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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